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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건축가 이야기_안토니 가우디 이야기

by imyourbob 2024. 6. 3.

안녕 여러분! 밥이에요.

 

여러분들은 좋아하는 건축가가 있나요?

 

저는 안토니 가우디를 좋아해요!

가우디가 누구냐고요? 

여러분 혹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사그리아 파밀리아 성당

 

고딕 성당의 전통을 잘 계승하면서도 가우디의 독창적인 형태와 구조를 갖춘 건물이에요. 1882년부터 착공에 들어간 이래 142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에 완공 예정이라고 하네요!

성당이 완공된다면, 예수를 상징하는 탑이 성당의 가운데에 가장 높게 위치하게 됩니다. 설계된 탑의 높이가 172.5 m로, 완성된다면 울름 대성당의 161.5 m를 넘겨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됩니다! 172.5 m인 이유는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언덕이 173m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하느님이 만든 것을 넘봐서는 안 된다는 가우디의 겸손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가우디에 대해 알아볼까요?


본명은 카탈루냐어식으로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지만 스페인어식 이름인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í)'로도 알려져 있답니다.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에요.  21세기인 지금도 바르셀로나를 빛낸 건축가이자, 스페인 건축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어요. 일반적인 천재와는 다르게 생전에 이미 대성공한 건축가로서 스페인의 아르누보 건축의 중심 인물이기도 하며, 스페인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1852년에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캄 데 타라고나의 바시 캄에 위치한 레우스나 리우돔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안토니 가우디가 태어났어요. 그의 아버지 프란세스크 가우디 이 세라와 어머니 안토니아 코르네트 이 베르트란은 주조 장인이었어요. 가우디는 어렸을 때부터 건강 문제를 겪었어요. 류마티스로 고생하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도 했고, 서 있기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옛 유적을 복원하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은 친구인 토다가 그의 사후에 이루어졌어요. 특히 형이었던 프란세스크와의 관계는 특별했는데요. 건장한 형이 약한 가우디를 많이 도와줬어요. 성적도 좋지 못했고 몸도 허약했던 가우디는 어느 날 친구에게 자신의 그림 실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게 그가 건축가가 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바르셀로나 건축전문학교에 입학한 가우디는 25세에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후, 시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아 건축가로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수입도 늘고 건강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청춘의 활기가 넘쳤던 시절에는 밤이면 거리를 누비며 노는 것을 즐겼어요. 술은 잘 못 마셨지만 미식을 즐겼어. 그는 예술가들이 모이는 카페의 단골이었는데, 자신의 인맥을 넓히면서 더 큰 일을 하고 싶은 의지가 생기게 됩니다.

 

1878년에는 카사 비센스를 건축하기 시작하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어요. 그 후 카탈루냐의 명문가 코미야스 후작의 별장을 건축하면서 가우디는 후원자 에우세비오 구엘 백작을 만났습니다. 1883년에는 구엘 가문 건축가가 되며, '구엘'이라는 이름을 딴 건축물을 대대적으로 건축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작업은 구엘 가문의 무한한 후원 덕분에 가능했어요.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로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주했어요. 그의 작품은 '카사 바트요'나 '카사 밀라'와 같이 다양한 것들이 있습니다.

카사바트요

 

1883년부터는 그의 삶을 헌신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건설에 전념했어요. 그러나 재정적 문제 등으로 완공을 못했어. 그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성당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그래서 후손들에게 완성을 맡기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1926년 6월 7일, 성당에서 미사를 마친 후 돌아오던 길에 노면전차에 치여 사망하게 됩니다. 사고 당시 전차 운전사는 가우디를 노숙자로 오해하여 그냥 두고 가버렸대요. 이 사고는 스페인 전국적으로 슬퍼하는 사건으로, 가우디의 시신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지하묘지에 안장되었있습니다.

 

가우디는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건축가였습니다. 특히 숲과 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그의 작품에 반영되곤 했죠. 그의 극단적인 채식주의도 그의 이러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종교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교회 관련 건축 일을 하면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의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건설할 당시에는 성당 내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정도의 헌신을 보였다고 합니다.

 

가우디의 건축은 카탈루냐 전통 복고주의와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넘어서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서양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명과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그의 작품에 반영하였죠. 그 결과, 그의 건축물은 독창적이고 혁신적인데, 특히 모더니즘과는 다른 독특한 양식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예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탁월합니다. 그의 건축물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기능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고려하여 설계되었습니다. 둥근 천장과 나무 형태의 기둥은 힘의 흐름에 따라 설계되었으며, 채광과 환기 등 기능적인 측면도 충실히 고려되었습니다.

 

가우디는 단순히 설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건축 현장에서도 세심한 관리를 했습니다. 미장공이나 타일공을 직접 섭외하여 자신의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오늘 건축가 가우디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어떠셨나요?

 

다음 편에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이야기를 들고 오겠습니다!

 

안녕!